Thứ Năm, 2 tháng 5, 2019

[매지컬 미스터리투어] ⑦ 관 주변의 작은 꽃다발, 투탕카멘 스토리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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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지컬 미스터리투어] ⑦ 관 주변의 작은 꽃다발, 투탕카멘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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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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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 고고학박물관  
관 주변의 작은 꽃다발, 투탕카멘 스토리
글, 사진| 원형준, 류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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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의 황금가면> 기원전 1334~1325년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투탕카멘과 미라를 떠올리기 마련인 때문인지, 카이로 고고학박물관에서 관객이 붐비는 곳은 단연 투탕카멘 특별관이다. 왕의 계곡에 잠들어있던 투탕카멘의 미라와 부장품은 1922년 하워드 카터가 깨웠다. 그가 왕의 무덤을 열고 들어가 관 뚜껑을 처음으로 열었을 때의 감동을 이렇게 기록했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관 주변에 놓여있던 작은 꽃다발이었다. 이 꽃다발은 남편을 잃은 어린 왕비가 바친 최후의 선물로 생각하고 싶다. 황금빛 찬란한 제왕의 호화로움과 화려함 속에서, 아직도 아련히 색을 간직한 작은 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그것은 3천 3백 년이라는 긴 세월조차 극히 짧은 시간, 어제와 오늘의 경계에 불과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워드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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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투탕카멘의 조각상

 
투탕카멘은 어린 나이에 파라오에 즉위해서 신혼생활의 달콤함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유명한 것은 유물이 워낙 아름답고, 무덤이 도굴당하지 않아 다른 왕묘에 비해 유물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극적인 삶과 하워드 카터의 열정적인 발굴 과정이 낭만적으로 전해지고 상상 속에서 윤색된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몇 천 년 전에 누군가 만든 것을 발굴해내는 고고학 그 자체가 낭만적이다). 파라오 투탕카멘이 왕위에 올라 결혼을 하고, 죽음을 맞이해 미라가 되어 무덤에 안치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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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의 왕좌> 중 등받이 부분. 기원전 1334~1325년. 태양신 아텐이 뿜어내는 햇빛이 여러 개의 손으로 표현됐다.

파라오 아케나텐이 죽었다. 그 뒤를 세멘카레가 이어 왕위에 올랐고 3년이라는 짧은 통치기 이후 큰 누나의 뒤를 이어 어린 투탕카멘이 파라오에 즉위했다. 왕이 된 그는 9살 동갑내기 공주 앙케세나멘과 서둘러 혼인했고, 그들 신혼부부의 다정한 모습은 황금 옥좌에 남겨졌다.
 
신혼의 어린 부부는 태양신이 내뿜는 황금빛 손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왕비는 꽃무늬 장식 옆에 서서 오른손으로 남편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다. 궁정신하들에게 나서기에 앞서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다. 어린 왕은 사랑스러운 눈으로 은빛으로 빛나는 투명한 아마포 드레스 차림의 왕비를 바라보고 있다. 파라오의 하루하루는 바쁜 연속이었지만 그렇게 왕과 왕비는 망중한을 보낼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린 파라오는 왕의 직무에 익숙해졌고 권력을 강화해나갔다.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사냥터에서 낙마한 왕이 뒷머리를 크게 다쳤다. 일각에서는 사실은 왕이 피습당한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지만 끝내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날 밤 왕의(王醫)를 비롯해 테베의 유명하다는 의관들이 모두 모여 파라오를 치료했으나 왕은 끝내 죽음의 강을 건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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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포스 단지. 시신의 내장을 보관하는 항아리다. 사람들은 카노포스 단지에 담긴 내장을 네 신들이 지켜준다고 믿었다. 각각 사람의 머리를 한 신은 간, 원숭이 머리의 신은 폐, 자칼 머리의 신은 위, 매 머리의 신은 장을 지킨다.


 신관들은 서둘러 어린 파라오의 시신을 제단 위에 가지런히 눕혔다. 향을 피운 뒤 시신에 다가가 왕의 왼쪽 옆구리를 살짝 째고 내장을, 코에 갈고리를 넣어서 뇌수를 꺼냈다. 다른 신관들이 꺼낸 내장을 받아 야자유와 향료로 씻은 뒤 네 개의 카노포스 단지에 넣고 단단히 봉했다. 사람들은 카노포스 단지에 담긴 내장을 네 신들이 지켜준다고 믿었다. 각각 사람의 머리를 한 신은 간, 원숭이 머리의 신은 폐, 자칼 머리의 신은 위, 매 머리의 신은 장을 지킬 것이다. 심장은 지혜의 원천이며 가장 중요한 내장이므로 심장은 시신 안에 남겨두었지만, 왕의 부활에 아무 역할도 못하는 뇌는 바로 버렸다. 소다액에 시신을 담근 신관들은 이제 물러나 긴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동안 시신 속의 모든 수분이 빠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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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의 여려 겹의 관


두 달이 조금 지나서 신관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먼저 시신을 소다액에서 꺼냈다. 그리곤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마천 붕대로 시신을 싸고 송진으로 만든 방부제를 틈틈이 바른 다음 관에 넣었다. 신관들은 붕대를 한 겹 감을 때마다 그 사이사이에 보석과 부적을 끼워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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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 무덤의 발굴 광경. 1922년 11월, 부장품들이 가득한 부속실 입구를 연다. 앞에 무릎을 꿇은 이가 하워드 카터다.


수개월에 걸친 미라로 만드는 작업이 끝나고 파라오의 시신은 눈부신 황금 관 속에 안치되었다. 시신 옆에는 왕비가 놓은 꽃다발이 그녀의 눈물과 함께 놓여있었다. 관은, 네 개의 금박 입힌 나무 상자 안에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석관이 있고 또다시 그 안에 꼭 끼워 맞춘 세 개의 관이 있었다. 그 중 두 개는 금박 목관이었고, 가장 마지막에 나온 것은 순금 관이었다. 금을 두드려 만든 금판 위에 색유리, 라피스 라줄리, 터키옥, 홍보석 등으로 상감 처리해서 순금 관을 만들었다. 안쪽의 세 관 모두에는 이시스 여신과 네프티스 여신의 날개를 펼친 모습이 그려졌는데, 왕의 육신은 그렇게 보호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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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부장품들.


이제 투탕카멘은 육신의 얼굴 대신 황금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의 이마에는 상하 이집트의 지배자를 상징하는 독수리와 코브라가 달려있었다. 이로써 투탕카멘은 저승에서도 이집트의 파라오로 존재할 것이다. 목에는 여러 가지 보석으로 만든 널찍한 목걸이가 걸려있었고, 몸 위에는 그것이 놓인 위치에서 생명의 유체가 순환할 많은 보석들이 놓였다. 생전에 귀걸이를 했던 왕의 귀에는 구멍이 남았다. 목걸이와 같이 왕권을 상징하는 턱에 길게 달린 턱수염은 파라오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길었다. 고요한 모습의 가면에는 영원한 생명이 담겼고 태양빛이 머물렀다. 머지않아 파라오는 부활할 것이다.
 
장례 의식을 거행하는 날 아침, 관은 태양신이 지배하는 나일 강 동쪽으로부터 죽음의 땅인 서쪽으로 옮겨져서 왕의 계곡에 있는 작은 무덤에 안치되었다. 무덤은 파라오가 부활할 황금의 집이었다. 그곳엔 장례 의식 이후에 봉인될 입구, 가파른 내리막 통로, 파라오의 영혼이 건너게 될 장식된 방과 석관이 안치된 방이 있었다. 왕의 무덤에는 모두 네 개의 방이 있고, 모든 방과 통로의 벽면은 빼곡히 벽화로 채워졌다. 벽화에는 죽음을 맞은 파라오가 영원한 삶으로 향하는 과정이 묘사되었다. 벽면에는 <사자(死者)의 서()>가 새겨져 있어 펼쳐진 책과 다름없었다. 그 중에는 삶의 근원인 태양신이 일몰과 함께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저승 세계를 지나 아침에 재탄생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도 있었다.
 
내리막길, 통로, 전실은 신성한 영혼이 지나가는 길이었다. 그것은 가장 안쪽에 위치한 부활의 방으로 연결되었다. 부활의 방은 파라오가 석관 속에서 잠들어 있는 곳이다. 죽음의 신인 오시리스 형상의 관 안에서는 유한한 존재가 영원한 존재로 바뀌게 될 것이다.
 
신관의 안내에 따라 왕비와 왕의 측근, 궁정의 대신들이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났다. 왕비와 일행은 조용히 열여섯 개의 층계를 올라갔다. 무덤에서 나온 그들은 화려한 술잔 하나를 무덤입구에 바쳤다. 무덤의 문을 벽돌로 쌓아 막고 자칼과 아홉 명의 포로들이 그려진 왕의 봉인으로 단단히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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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고고학박물관 정원의 한 켠에 세워져 있는 마리에트 동상


투탕카멘을 만나고, 카이로박물관의 구석구석을 탐사하고 밖으로 나오자 입장했을 무렵의 강렬한 점심 햇살은 어느덧 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박물관 앞마당 한쪽에서 당당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리에트의 동상이다. 이집트 문화재의 수호인으로, 이집트 박물관의 아버지로 여전히 존경받는 존재다. 프랑스인 마리에트와 서양 신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정원에 방치되어 있는 고 이집트 유물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무언가 아련한 느낌이 든다. 진짜 박물관에 와있다는 낭만적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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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고고학박물관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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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고고학박물관의 야경. 고고학의 낭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샹그릴라 같은 곳이다.



박물관의 존재가치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과 유물이 조곤조곤 소통할 수 있을 때 빛난다. 그 빛나는 존재가치를 유물 사이에서 떠들썩한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마리에트 동상에서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역시 카이로박물관은 우리에게 박물관의 샹그릴라였다. 진정한 샹그릴라.
 

원형준ㅣ미술사, 문화콘텐츠 연구자로, 관련 글을 쓰고 강의한다. noxnaer@gmail.com

류동현ㅣ서울대 고고미술사 전공. <아트> <월간미술> 기자와 문화역서울 284 큐레이터를 거쳐현재 미술저널리스트 겸 전시기획자, 페도라프레스 편집장이다. fedora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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